책 이야기

서평소개 "장기비상시대-석유 없는 세상 그리고 우리 세대에 닥칠 여러 위기들"

나무에게-- 2013. 6. 25. 07:52

꼭 읽기를 권해보고 싶은 책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석유시대의 종말을 예견하는 하워드쿤슬러의

"장기비상시대 -석유 없는 세상 그리고 우리 세대에 닥칠 여러 위기들" 이다.

이계삼의 청춘의 커리큘럼에 소개된 책으로 석유 시대 정점을 넘고 있으면서 에너지에 대한 우리 사회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관심, 무감각에 대한 질타를 보고 읽게 되었다.

한편 충격적이고 재미있게 읽은 터라 여러번 이 책의 리뷰 또는 서평을 한번 써 보고 싶었다.

늘 고민하는 현재와 같은 생활방식(대량 소비사회)는 결코 미래에 살아 남을수 없다는 사실, 현재 인류의 생활방식은 파국을 향해 놀라울 정로로 빠른 속도로 전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상기해 준다.

 

그런데, --

일다에서 너무 멋진 서평이 나왔다.

내가 쓰는것보다 차라리 이 편을 소개하는게 좋을것 같아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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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이 시대 청년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 장기 비상시대

 

현대문명과 거리를 둔 채, 산골에서 자급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도은님이 <이 시대 청년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 연재를 시작합니다. 도은님은 두 딸과 함께 쓴 “세 모녀 에코페미니스트의 좌충우돌 성장기” <없는 것이 많아서 자유로운>의 저자입니다.

 

밤이 정말 밤다웠던 시절

▲ 이중섭 작 <달밤>.

 

우리가 어릴 때는 밤이 지금처럼 환하지 않았다. 밝은 것은 달뿐, 밤은 정말 밤다웠다.

 

오래된 시골집을 빌려서 이사를 하다보면 전에 살던 이들이 버려두고 간 쓸모없는 구시대 물건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 중 녹슨 도끼, 호미나 괭이, 무쇠 솥, 항아리 등은 잘 닦으면 쓸 만한 시골 살림살이로 거듭날 수 있다. 대개는 썩고 곰팡이 피어 먼지가 되어가는 것들이거나 냄새 폴폴 나고 쥐똥 가득한 물건들이 대부분이지만.

 

낡은 시골집으로 몇 번 이사를 다니면서 나는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옛 물건을 발견한 적이 몇 번 있었다. 무슨 대단한 골동품 같은 것은 전혀 아니다. 어느 날 먼지를 뒤집어쓰고 무너져가는 창고 한구석을 치우고 있던 중이었다. 썩어서 거의 부서진 나무궤짝 속에 역시 썩어가는 장기판과 몹시 변색한 사진틀 등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 위쪽이 좁아지는 원통형의 작고 빛바랜 사기 그릇 두 개가 있었는데 볼록 솟은 뚜껑도 있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물건인지를 알아보질 못했다. 묵은 먼지와 거미줄이 두껍게 앉은 걸 이리저리 돌려보고 길쭘한 뚜껑 한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보고서야 ‘아하! 이게 예전에 호롱불을 밝히던 그 석유 등잔’이란 걸 알아보았다. 뚫린 구멍으로 길고 튼튼한 천이나 실을 꼬아 심지로 넣은 뒤에 용기 안에다 석유를 넣고 불을 붙여서 어둠을 밝혔던 등잔들.

 

그랬다! 내가 어릴 때는 밤이 지금처럼 환하지 않았다. 서쪽 하늘에 노을이 지고 밤이 오면 어둠도 친한 친구마냥 자연스레 찾아왔다. 밤은 정말 밤다웠다. 별이 뜨거나 안 뜨거나 대체로 캄캄했다.

 

여느 날들처럼 하루가 가고 밤이 찾아온다. 밖은 어둡고 어디선가 푸른 도깨비불들이 춤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작은 방 안, 등잔불에 성냥으로 불을 붙인다. 어린 우리는 이른 저녁을 먹고 밖에서 동무들과 숨바꼭질하며 놀다 들어와서 벌써 곯아 떨어졌다. 어머니는 등잔불 옆에서 구멍 난 옷들을 깁고, 오빠는 작은 밥상에 책을 펴놓고 공부를 한다. 졸음에 겨워 바느질감을 밀쳐놓고 누운 어머니는 오빠에게 석유 아까우니 빨리 불 끄고 자라고 말한다. 근데 아침에 일어나보면 오빠의 코 밑이 새까맣다. 말 안 듣고 늦게까지 등잔불을 켜놓았나 보다.

 

그러니 시골 동네에 처음 전기불이 들어왔을 때 우리가 얼마나 놀라워했겠는가. 겨우 5와트나 10와트 정도 되는 작은 알전구 하나로 온 집안을 밝혔는데, 그게 너무나 눈부시게 밝아서 엄청나게 신기해하며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그 뒤 몇 십 년이 흐르면서 세상의 밤은 너무나 밝아졌다. 밤새 켜있는 가로등들, 대낮처럼 환한 쇼핑센터들. 눈부신 조명들이 켜있는 건물들과 아파트들. 시골도 가로등이 구석구석 들어왔다.

 

 

현대의 기적과 경이가 가능했던 이유는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기술 진보의 경이로움에 매혹되고 홀린 상태로 일상을 살고 있다. 너무나 매혹되어서 약간은 집단 최면 상태이자 거의 몽유병자들처럼 미래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이런 기술의 발달과 풍요가 일상의 구석구석을 지배하게 된 시대에 태어난 청년들은 가난하건 부자건 간에 이 경이로움을 거의 실감하지 못한다. 세상이 원래 이랬다는 듯이.

 

하지만 산업화 이전 시기 혹은 산업이 막 발달하던 시기에 태어난 세대들에게 세상의 변화란 그야말로 마술 같은 그 무엇이 아닐까. 나름대로 당시의 천문, 지리, 과학 등에도 밝아서 진보학파라 할 수 있는 18세기 정치 경제학자이자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한테 대형 마트와 자동차와 인터넷 세상을 보여준다고 해보자. 대체 그가 무엇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비행기로 하늘을 날아서 하루 만에 지구 반대편에 도착하고, 달에 가고, 화성을 탐사하는 시대이다. 자동차, 비행기, 전기, 고층 빌딩, 영화, TV, 인터넷, 엑스레이 등 우리가 지금 당연시하는 그 많은 것들이 사실은 100년도 채 안 된 것들이다. 그런데 이런 기술이 지질학상 그리고 역사적으로 아주 특별하고 독특한 시기에만 꽃피울 수 있는 것이란 사실을 많은 사람들은 깊이 생각해보지 않는다. 이 특별함은 바로 화석연료인 석탄, 석유, 천연가스 덕분에 발달한 것인데 말이다.

 

즉, 현대의 이 모든 경이와 기적은 인류가 값싼 석유와 천연가스를 풍부하게 공급받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속될 문명이 아니란 뜻이다. 석유시대는 그 본성상 계속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특별한 시대가 곧 끝나리라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또 놀라운 화석 연료를 대체할 만한 게 아직 없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참으로 이상한 점은 정치인이든 지식인이든 일반 대중이든 이 사실에 깊은 관심을 갖고서 다가올 미래를 궁리해보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거다. 왜 그럴까? 너무나 강력한 진실이라서 감당하기가 어렵기 때문일까?

 

그런데 이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는 아주 비상한 책이 있다. 미국의 작가이자 사회 비평가인 제임스 하워드 쿤슬러가 지은 <장기 비상 시대(The Long Emergency)>(갈라파고스, 2011)란 책이다. 이 책은 우리의 석유 의존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석유가 점차 고갈되면서 일어날 세계의 경제적 정치적 격변과 기후 변화, 식량 위기가 닥치게 되는 가까운 미래를 매우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하워드 쿤슬러가 말하는 ‘석유 없는 시대의 삶’

 

 

 

▲ 미국의 작가이자 사회 비평가인 제임스 하워드 쿤슬러가 지은 <장기 비상 시대>

(갈라파고스, 2011)는 석유가 점차 고갈될 가까운 미래 사회의 변화를 매우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석유가 없어진 후에 우리는 어떤 삶을 살 게 될까. 이 책은 풍부한 자료조사와 비판정신으로 담대하지만 과장 없이 이 문제를 조목조목 짚어낸 믿음직한 글이다. 한마디로 아주 잘 쓴 책이다. 석유 생산 정점(오일 피크) 문제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 인류가 맞이하게 될 시기를 “기나긴 비상시대”라고 설정하고서, 이 시대를 여러 분야에 걸쳐서 나름 정교하게 예측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석유 시추의 역사, 과학과 기술, 경제와 금융사, 국제 정치와 사회 변화, 대체 에너지 개발에 대한 환상, 기후 변화와 그에 따른 변동들을 찬찬히 읽어낼 수 있다.

 

쿤슬러라는 작가는 큰 그림을 그려낼 줄 아는 통합적 지성을 갖춘 사람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세상의 종말이나 인류의 멸종을 예측하면서 우리를 겁주는 책은 전혀 아니다. 아주 합리적인 방식으로 신뢰할 만하게 쓰였다는 뜻이다. 현대 기술문명에 깊이 중독되어 있는 청년들은 쿤슬러가 그리는 혼돈의 미래를 외면하고 싶겠지만, 부디 용기를 내어서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전혀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나 흥미롭고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밤을 새워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내용들을 읽으면서 어떻게 잠이 오겠는가.

 

 

“화석 연료는 지질사의 독특한 선물이다. (...) 화석 연료, 즉 석탄, 석유, 천연가스가 일반화되기 전에는 지구 인구가 10억이 되지 않았다. 이제 화석 연료의 시대가 열린지 두 세기가 지났고 추출량이 역대 최대인 오늘날, 지구는 65억 이상의 인구를 부양하고 있다. 화석 연료의 노다지는 한 번뿐인 사건이었으며, 우리가 그것을 누린 기간은 인류사에서 비정상적인 시기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발달한 기술이 현대 산업 문명을 구해내지 못할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내가 이야기해본 사람들이나 배울 만큼 배웠다는 지인들도 그렇게 말한다. ‘뭘 그렇게 걱정해요? 지금까지 놀랍게 발전을 해왔으니 앞으로도 잘 해나가지 않겠어요?’ 기술 진보의 힘을 믿는 순진하고 태평한 낙관론자들이다.

 

 

“우리가 현대 생활의 혜택으로 여기는 모든 것의 바탕이 값싼 석유와 천연가스라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우리 시대의 모든 생필품과 안락과 사치와 기적은 그 기원이나 존속을 어떤 식으로든 값싼 화석 연료에 빚지고 있다. 이를테면 중앙난방이나 에어컨, 자동차, 비행기, 전기, 저렴한 의류, 녹음된 음악, 영화, 슈퍼마켓, 전동 공구, 인공 고관절 수술 그런 것들이 전부 그렇다. 심지어 원자력발전소도 건설이나 정비, 핵연료의 추출이나 가공의 모든 과정을 값싼 석유와 천연가스에 의존하고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의 유혹이 너무나 강했고 우리를 완전히 사로잡아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이 준 그 기적의 선물들이 지닌 본질적 특성을 더 이상 눈여겨보지 않게 되었다. 즉, 그것들이 유한하고 재생 불가능하며, 고르게 분포해 있지 않은 자원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만 것이다.”

 

 

그래서 낙관주의자들은 미래에 어려움이 닥쳐도 어떻게든 극복하리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석유가 고갈되기 직전에 천재 과학자들이 ‘짠’하고 나타나 무슨 환상적인 기술이나 대체 연료들을 개발할 거라고 생각하나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쿤슬러의 주장처럼 나도 화석연료로 인한 풍요는 인류에게 한 번만 허락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지구 역사에서 유별나게 풍요롭고 특별한 한 시기를 살았다는 점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싶다.

 

 

겸손해진 마음으로 미래의 고난을 맞이한다면

 

 

석유가 끝나간다면 인류는 필연적으로 에너지 결핍을 비롯한 여러 가지 크나큰 어려움과 상실들을 겪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류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리란 미래를 나는 믿는다. 물론 그 미래는 지금처럼 환한 세상은 아니리라. 약간 어두침침한 세상이 되리라. 거대 시스템들과 우리를 억압하던 체제도 사라질 테니 규모도 훨씬 작아질 것이고, 지역적일 것이고, 기계가 아닌 인간의 손을 가지고 만들어낸 세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산업 문명의 부산물들, 즉 플라스틱 쓰레기든 뭐든 이미 생산된 많은 것들을 재활용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희망으로 여기는 점은 산업 문명 기간 동안 화석 연료를 등에 업고서 무식한 깡패처럼 자연을 파괴했던 인간의 오만방자함이 수그러들 거라는 점이다. 그러면 자연은 어떻게든 스스로 회복을 해나가리라. 온난화나 기후변화나 소빙하기가 닥치더라도 자연은 자기 방식대로 나아갈 것이고, 인류는 자연의 신비롭고 겸손한 자식으로 살아갈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을 꼼꼼히 읽는다면 정말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석유생산 정점을 핵심 개념으로 해서 근현대사와 화석 연료의 딜레마를 다루는 장이 있고, 이미 시작된 자원 쟁탈 전쟁의 큰 그림들도 볼 수 있으며, 대체 연료가 어떻게 산업 문명을 구원할 수 없는지도 합리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기후 변화, 유행병, 물 부족, 환경 파괴, 산업화시대의 그늘을 그린 ‘자연의 역습’ 장을 읽으면서는 겸허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런 겸손해진 마음으로 미래에 불가피하게 다가올 고난을 투덜거리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또 그 시대를 어찌 살아갈지를 고민해본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살아갈 날들이 많은 청년들은 특히나 고민해야 할 것이 정말 많다. 그렇다고 자기 혼자 살겠다며 비상식량을 쟁여두는 식의 ‘종말 대비 생존주의자’가 되라는 말은 아니다.

 

 

“나는 우리가 앞으로 닥칠 미래를 향해 자발적으로 나아가든, 발길질을 하고 비명을 지르며 끌려가든, 우리가 직면하게 될 만하거나 직면하게 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우리의 생활방식을 근본적으로 재조정하는 일, 즉 모든 활동에서 규모를 전면적으로 축소하거나 조정하고 지역화 하는 일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 맹목성을 가진 거대 시스템은 이제 나름의 추진력을 얻고서 나아가고 있다. (...) 하지만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우리가 지금까지 이루어온 생활방식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거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은 우리의 역사 지식과 비판적 지성을 자극할 만한 풍요로운 내용들이 가득해서 청년들이 미래를 사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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