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이야기

이효리 ! 세상을 보는 눈이 멋있다.

나무에게-- 2013. 6. 12. 11:33

 

 

 
가수 이효리씨가 9일 오후 서울 논현동 한 카페에서 조국 서울대 교수와 얘기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조국의 만남
동물보호활동 하는 가수 이효리

 

걸그룹 출신 최고 스타로, 생명과 생태에 진지한 관심을 갖고 활동하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쾌활하면서도 소신 있고 당차며 심지 굳은 사람이었다. 인터뷰 내내 내면의 고민과 갈등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헤어진 뒤에도 그의 두 팔에 새긴 문신의 의미가 오랫동안 뇌리를 맴돌았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patriamea

 

“생명 생각하다보니 정치에도 관심…‘자본주의 꽃’ 내 변화 고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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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항에서 튀어나와 강으로 헤엄쳐 나가는 해방감을 느꼈군요. 다른 여가수에 비하여 여성 팬도 많은데,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요?

 

“섹시함이건 뭐건, 자기주도적 여성의 모습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요. 남성의 시각에 맞춰진 여성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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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으로 활동하면서 불쾌한 일이 제법 있었을 텐데.

 

“행사장에서는 갑자기 엉덩이 만지는 사람, ‘이효리, 너 나와’라고 막말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촬영장에서는 ‘가슴골을 조금만 더 보여주세요’라는 요청도 받았고….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왜 이런 취급 받아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몇억원 준다 해도 나를 상품 취급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내놓는 게 싫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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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동물 또는 반려동물 보호 문제를 넘어 ‘공장형 사육’ 반대운동도 벌이고 있죠? 이 맥락에서 채식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완전 채식주의자인 ‘비건’(vegan)인가요?

 

“아니요. 붉은 고기, 치즈, 우유는 먹지 않고, 물고기는 먹어요. 내가 동물을 너무 사랑해서 먹을 수 없다는 게 아니에요. 제가 채식하는 이유는 소, 돼지, 닭 등이 키워지는 체제에 반대하기 때문이에요. 인간이 고기를 너무 싸게 많이 먹으려 하니까 동물들은 점점 더 열악한 상황에서 키워질 수밖에 없어요. 에이포(A4) 용지 한 장 크기 공간에 닭 두 마리씩 들어가 평생 살아야 한다는 걸 상상해보세요. 얼마나 끔찍해요. 우리 인간들은 자신이 먹는 고기가 어떻게 키워지고, 어떻게 죽임 당하는지 모르잖아요. 광고에선 동물이 파란 하늘 아래 푸른 목장에서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전혀 사실과 다르거든요. 이런 현실을 널리 알리고 싶어요. 고기를 먹든 안 먹든, 현실을 알고 나서 선택해야 하니까요.”

 

-동물 가죽이나 모피로 만든 제품도 사용하지 않는다면서요?

 

“유명 브랜드 회사에서 악어가죽 가방을 보내주었는데 돌려보냈어요.”

 

-동물의 권리에 관심을 가지면 생명과 생태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 법인데….

 

“환경에도 관심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점점 제약이 많아져요. 환경 생각하면서 샴푸 선전 하지는 못하겠더라고요. 환경문제가 있는 광고를 안 하겠다 했더니, 소속사에서 싫어하더라고요.(웃음) 그리고 사람의 생명에도 당연히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두 개의 문>, <저 달이 차기 전에>, 이런 다큐영화 많이 봐요. 노동자, 약자의 생명이 돈과 강자에게 밀리는 현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요. 관련 책도 보고 있어요. 언젠가 <녹색평론>을 보고 있으니 회사 대표님이 ‘불온서적 보고 있냐’고 잔소리하시더라고요.(폭소) <녹색평론>은 어디에서도 알려주지 않는 내용들을 많이 알려줘요. 한 달에 1만원 내고 정기구독하고 있어요. <작은 책>도 정기구독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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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에 새긴 문신이 특이합니다.

 

“하나는 ‘브라마 비하라스’(Brahma Viharas)인데, 의역하면 ‘우주의 근본’이란 뜻이고, 다른 하나는 화엄경에 나오는 ‘인드라망’ 그림이에요. ‘우주의 근본’을 생각하고, 내가 모든 만물과 연결돼 있다는 점을 항상 환기시키려고 새겼어요.”

 

-생명과 생태에 대한 생각을 몸에 새겼군요. 멋집니다! 유기견 보호에 관심 가진 것을 시작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군요.

 

“저도 저에게 이런 큰 파장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 전에 자랑스럽던 게 지금은 부끄럽고, 그 전엔 좋았던 게 지금은 싫고…, 고민이 많아요. 자본주의의 꽃이었던 제가, 자본주의 최대 수혜자인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 나름의 이유로 광고를 안 하겠다 했더니, ‘이효리 한물갔나’ 이런 기사 나오더라고요. 이런 기사 접하면 씁쓸해요. 내가 아직도 그런 것에 연연해하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대중의 기호에 맞는 내가 있었는데, 이제 사람들로부터 잊히고 멀어지는 것 아닌가, 걱정도 들어요. 또 내가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는 것은 아닌가, 염려도 하고요. 아무것도 모를 때는 무지에서 오는 편안함이 있잖아요. 돈도 많았고 인기도 많았고요.”

 

-자초한 고민이고 갈등이네요. 그러나 소중한 고민이고 갈등이고요.

“고민하지 않고 갈등하지 않고 사는 사람 많잖아요. 왜 자초한 것인가 나도 모르겠어요.(웃음)”

 

-어디서 행복을 찾나요?

“돈은 아닌 것 같고요. 유명세나 발언권도 아닌 것 같고…, 어디서 찾을까요? (고민을 하더니) 소소한 일상의 삶에서 찾는 것 같아요. 동물이든 사람이든 내가 도움 주고 필요한 사람 된다는 느낌 들 때 제일 행복해요. 우리는 누군가의 희생에 힘입어 살고 있잖아요.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 상당수는 동물실험을 해요. 그 동물들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되돌려주는 삶을 살자, 이런 생각을 해요.”

 

-현재 앨범 작업을 하고 있나요?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어요.(웃음) 말씀드렸듯이 저에게 너무 많은 변화가 생겨서 이전과 같은 노래를 하기가 어색한 거예요.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아요. 과도기에 있으니까. 어떤 노래를 하고 싶다는 확신이 들지 않아 앨범을 못 내고 있어요. 그러나 제가 하고 있는 고민과 갈등 덕분에 정말 좋은 노래를 하는 가수가 될 것 같아요. 박노해 시인이 그랬잖아요. 좋은 시를 쓰려고 하지 않았지만 세상에 관심을 갖다 보니 좋은 시를 썼다고.”

 

-10년 뒤의 효리는 어떤 모습일까요?

“저도 궁금해요.(웃음) 나이 들고 주름지는 것, 이런 건 전혀 상관하지 않을 것 같아요. 모든 것 접고 시골로 가 자연과 벗하며 살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다시 흘러흘러 살면서 방송하고 노래하고 살 수도 있고요. 과거의 저보다 미래의 제가 더 멋있을 것 같아요, 어떤 방향이든 간에. 멋있게 살고 싶어요. 스타는 주위가 어두울 때 빛난다고 하잖아요. 주위가 환하면 그 빛이 약하니까. 더 빛날 수 있게 어둠으로 들어가야죠.”

 

정리 음성원 기자 esw@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