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그늘 아래서

[세상읽기]한국전력

나무에게-- 2013. 8. 30. 14:40

한국전력은 좋은 직장이다.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7000만~8000만원 사이, 억대 연봉자도 적지 않다고 한다. 신입사원들은 대부분 명문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인재들로 채워진다고 한다. 국가의 기간산업을 관장하는 엘리트라는 자부심이 대단할 것이다.

지난 2월 한 달 내내 밀양 송전탑 반대 싸움에 참여하는 어르신들은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 앞에서 릴레이 단식 농성을 했다. 그리고 하루 세 번 피켓시위를 했다. ‘신의 직장’에 드나드는 직원들의 차림새는 다들 근사해 보였다.

대책위 사무국장인 나는 피켓을 만들면서 “한국전력은 당신들이 한 짓의 의미를 스스로 깨닫기 바란다”는 문구를 넣어 보았다. 그것은 내가 이 싸움에서 얻은 분노를 집약한 표현이면서, 그들에게 전하는 내 양심의 호소이기도 했던 것이다.

지난 8년, 밀양에서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한국전력은 익숙한 매뉴얼대로 했을 것이다. 소수의 마을 유력자들을 접촉하고, 보상금으로 회유하고, 송전선로 건설에 무소불위의 권능을 부여하는 현행 법·제도의 위력을 은연중에 흘리면서, 반대투쟁에 앞장서는 주민들에게는 고소·고발과 손배 가압류 조처로 주저앉히는, 그런 익숙한 경로를 답습했을 것이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무른 메주 밟듯, 이 나라 온 산천에 송전탑을 꽂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전력은 대기업 앞에서는 얼굴이 싹 바뀐다. 산업용 전기를 등유 가격의 절반 수준으로 공급하여 어마어마한 혜택을 준다. 역시 대기업인 민간 발전사가 생산한 전기를 같은 시간대 가장 높은 가격으로 구매하여 천문학적인 이익을 안겨주고, 자신은 매년 조 단위의 적자를 뒤집어쓴다. 한국전력은 이 손해분을 벌충하기 위해 다른 ‘호구’를 찾아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전력 손실이 가장 적은 76만5000볼트 초고압 송전탑이 마을 앞으로, 농토 바로 위로, 학교 곁으로 지나가는 최단 노선을 그었을 것이다. 한국전력이 점찍은 최종의 ‘호구’는 바로 이 시골 노인들이었던 것이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일흔네살 노인이 제 몸을 불태우며 호소를 했겠는가. 얼마나 절박했으면 37도의 폭염에 쓰러지고 옮겨지는 일을 반복하면서도 노인들이 산을 올라 포클레인 앞에 드러누웠겠는가. 보상금 문제로 마을이 갈가리 찢겨 원수처럼 싸우고 있다. 현장에서 주민들과 함께 싸우던 스님이 성폭력과 다름없는 끔찍한 폭행과 모욕을 겪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지옥도가 이 싸움 속에 있다.

나는 지난 2월 한 달 동안 한국전력 직원 단 한 명이라도 우리 농성천막을 찾아와줄 것을 기다렸다. 나는 그 한 사람의 방문으로라도 한국전력을 용서하고 싶었다. 그러나 끝내 단 한 명도 찾아오지 않았고, 한 달 내내 하루 네 시간 동안 서 있던 어르신들에게 ‘수고하십니다’라는 인사 한마디 전해지지 않았다.

이 모든 일은 모두 잘못된 법체계, 악마적인 시스템의 몫인가? 그러므로 사장님, 장관님, 의원님, 대통령님의 책임인가? 나는 한국전력 직원들에게 직장을 버리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법과 시스템을 그렇게 신뢰한다면, 이 나라에 구축된 민주주의적 법·제도와 시스템이 열어놓은 작은 공간에서라도 담당자인 자기 양심의 목소리를 내 달라는 것이다.

지금 밀양 송전탑 싸움은 해법에 관한 기술적인 논의로 옮겨가 있다. 전기공학에 까막눈인 우리들 모두는 저들 한국전력 엔지니어의 완강한 설명 앞에 눈만 껌벅이며 앉아 있다. 그들의 주장은 찍어낸 듯 똑같다. “돈이 많이 든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다른 길이 없다.” 하도 오랫동안 속아온 주민들은 누구도 이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과연, 길이 없겠는가. 나는 지금 양심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계삼 <오늘의 교육>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