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녹색평론133호 - 생태주의자가 본 역사교과서 문제

나무에게-- 2013. 11. 9. 20:43

 

 

생태주의자가 바라본 역사교과서 문제

 

모든 의견에 동의할 수 없지만 역사 교과서, 곧 역사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좀 불편하게 생각했던 내용을 비교적 잘 비교해 놓았으며, 역사 교과서 즉 국가에서 국민의 통합과 같은 기억을 강제하기 위해 만든 역사의 본질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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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이래 한국의 역대 정부는 ‘민족사의 정통성’을 내세우며 각급 학교를 대상으로 표준화된 한국사 교육을 고집했다. 바른 한국사 교육으로 민족정신을 앙양하겠다던 역대 정부의 반복된 주장을 곰곰 생각해보면 그것은 일종의 세뇌행위, 즉 국가적 폭력이었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교학사 역사교과서 논쟁의 근본 성격도 그러하다. 정확히 말해, 이 교과서 논쟁은 우경화로 치닫는 권위주의적 국가의 폭력적 실체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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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대표하는 역사가들은 근대국민국가의 충복일 따름이다. 그들이 공들여 썼다고 하는 한국사 교과서는 좌우를 막론하고 ‘대한민국 국민의 관점에서 보는 한반도의 역사’다. 검인정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정부가 정한 지침에 따른 표준화된 역사책들이다. 이를 통해 역사가들은 한국 국민 모두에게 공통된 역사적 기억을 강요하고, 이로써 국가공동체의 영속을 도모한다. 나는 이것을 학문적 권위주의에 토대한 일종의 지적 폭력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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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는 과거 한국사회를 어둠에 빠뜨린 부당한 폭압과 배제의 역사를 망각하고, 일제강점기부터 군사독재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군국주의와 권위주의적 행태의 본질을 사실상 외면했다. 그들은 독재세력이 추구한 ‘과잉산업화’의 역사를 찬양하면서 ‘국민통합’을 부르짖는다. 여기서 나는 조지 오웰의 유명한 명언을 떠올린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며, 그들은 과거를 통해 결국 미래까지 지배한다.”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가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된 것은, 한국의 기득권층이 오웰의 경고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과잉산업화’의 일등공신으로 믿고 있는 보수기득권층, 그들은 현실을 지배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배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과거마저 전유하려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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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주의의 입장에서, 교학사를 비롯한 현행 한국사 교과서의 문제점을 나는 세 가지로 간단히 언급하고 싶다.

 

첫째, 민족주의 또는 국가주의의 성향이다. 문제의 책자뿐만 아니라 뉴라이트 전반이 다 해당되는 문제이다. 심지어는 그들을 비판하는 진보진영 역사학자들의 교과서들도 역시 빠져나갈 수 없는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점이다. 한국사회가 자국사의 교육 목표를 ‘국민통합’ 또는 ‘민족통합’에 둘 경우, 이러한 문제점은 해결하기 어렵다. “역사가 바로 서야 국가·사회의 미래가 보장된다. 역사가 바로 서야 분열과 대립, 갈등과 반목이 치유될 수 있다”(바른역사국민연합 창립선언문)는 주장은, 기실 우파만의 견해가 아니라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지수걸을 비롯한 좌파 역사가들은 문제의 교학사 교과서가 민족주의의 흐름에서 벗어났다고 지적했다. 이것은 피상적인 인식일 뿐이다. 문제의 교과서가 일제의 식민지 통치방식이나 위안부 문제 등을 다소 애매한 시각에서 다뤘다고는 하지만 민족주의를 포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파의 새 교과서가 대한민국의 영광을 그리는 데 그쳤다고 주장하는 좌파들의 비판은 과장된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좌우를 막론하고 한국 사학계 전반이 민족주의에 중독되어 있다.

 

둘째, 한국사 교과서의 또다른 문제점은 과도한 자기미화다. 우파는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토대로 건국되어, 지난 60여 년간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하고 높은 수준의 교육과 문화를 발전시켰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대한 현대사’라고 일컫는 데서 기득권층의 속셈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나 좌파의 자기미화도 도를 넘었다. 그들은 이른바 한민족의 과거를 미화하여 평화를 숭상하는 이상적인 공동체가 역사적으로 실재한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이 역시 믿기 어려운 사실 왜곡이다.

 

끝으로, 좌우 양측은 과잉산업화를 당연시하는 공통점을 가지면서도 각자의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는 데 여념이 없다. 우파는 좌파를 ‘종북 좌파’라고 몰아붙이지만 근거가 없는 억지다. 그들은 좌파가 쓴 기존의 역사교과서를 ‘급조된 민중사관’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좌파의 역사서술이 과연 민중 중심의 역사서술이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들 좌파의 역사서술 역시 도시중심, 산업중심, 남성중심이다. 그럼에도 우파는 좌파를 궁지에 빠뜨리기 위해 억지 주장을 늘어놓는 것이다. 좌파가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로 낙인찍고 김일성 전체주의를 정통성 있는 체제로 미화시켰다는 우파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억지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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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국사회에 진정한 의미로 좌파와 우파를 구별하는 이념상의 편차가 존재하기는 하는가. 생태주의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좌파와 우파는 일란성 쌍생아로 보인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좌우파는 모두 민족과 국가의 영광과 배타적인 이익을 내세운다. 그들 모두는 경제성장의 신화에 매달려 있기도 하다. 그리하여 그들은 과잉산업화에서 국가와 사회의 보랏빛 미래를 찾는다. 그들 사이를 가르는 편차가 있다면, 친일과 독재를 바라보는 시각에 약간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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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숙한 우파에게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권력의 독점을 위해 마녀사냥을 기획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은 ‘건국’과 ‘산업화’를 한 축으로 삼아서, 민주화운동의 지지세력을 몽땅 ‘종북 좌파’로 매도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우경화다. 권위주의적인 반민주사회로의 퇴행이다. 이미 경제성장의 신화를 잃어버린 기득권층은 시민들의 입과 손발을 꽁꽁 묶은 채 전쟁공포를 확산하며 계급적 이익을 노골적으로 추구할 우려가 있다. 이런 변화는 신자유체제하의 미국과 후쿠시마 사태 이후의 일본에서도 목격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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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권력이 원하는 것은 결국 권위적인 시절로의 회귀라서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생태주의의 입장에서 금번의 교과서 논쟁을 계기로 ‘녹색’ 교과서의 탄생을 더욱 간절히 염원하게 되었다.

이 순간에도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밀양 송전선 문제도 그렇고, 제주 강정 문제도 결국은 잘못된 역사인식의 결과다. 경제개발 또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은 결코 필요악도 아니고, 가능한 것도 아니다. ‘과잉산업화’는 인류의 본질적인 재앙이다. 많은 역사교과서는 심지어 전쟁까지도 불가피한 것으로 가르치는 경향이 있지만, 전쟁은 국가권력 또는 거대자본의 이익을 위한 도구일 따름이다.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가치는 대다수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기는커녕 파멸로 이끄는 ‘악마의 맷돌’이다. 이처럼 중차대한 사실을 속속들이 깨닫게 하는 새로운 역사교과서가 나와야 한다. 그것이 하필 국가권력이 편협하게 재단한 한국사 교과서이어야 할 까닭은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