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제로성장 시대가 온다》, 리처드 하인버그 - 파티가 끝났다고 불행해지는 건 아니다.

나무에게-- 2013. 9. 12. 20:03

 

 

제로성장 시대가 온다, 리처드 하인버그 지음, 노승영 옮김, , 2013.

 

 

한때 송도신도시가 개발 모델로 삼으려 했던 두바이. 세계 타워크레인의 절반이 모였다는 그곳에 163830미터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 높이의 건물 부르즈 칼리파가 있다. 전기 공급이 끊어지면 황급히 떠나야 할 시설이다. 우리나라도 가진 실내 슬로프는 섭씨 50도를 오르내리는 열사의 땅에서 스키를 즐기게 한다. 막대한 전기가 공급되지 않으면 꿈도 꿀 수 없는 시설이다.


카타르는 2022년 월드컵 개최지다. 여권 빼앗긴 외국인 노동자를 착취한다는데, 카타르 인구보다 많은 노동자는 월드컵 경기장과 호텔 신축이 끝나면 빠져나갈 것이다. 잠시 벌어지는 경기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경기장과 호텔을 지어야 할까. 경기장마다 에어컨을 켤 예정이라는데, 얼마나 많은 전기가 필요할까. 월드컵 대회를 마치면 그 시설은 어떻게 한담.


잔치가 끝나면 무엇을 먹고 살까에서 박승옥은 가로 10센티미터가 채 안 되는 도표를 책 하단에 선보였다. 서기 0년에서 4000년까지 표시한 도표로 2000년 전후에 가파르게 상승했다 사라지는 그래프를 보여준 박승옥은 주목할 설명을 덧붙였다. “도표를 석유생성 시기까지 연장해서 그리면 왼쪽으로 17킬로미터나 더 종이가 필요하다는 게 아닌가.


사람이 지구 생태계에 동참한지 길게 잡아 100만년이다. 그중 99퍼센트의 세월 동안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헤쳐온 사람은 자신보다 훨씬 먼저 생성된 석유를 펑펑 소비한지 고작 100년이 되었고, 이제 고갈을 앞두고 있다. 100만년을 한 사람의 출생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시간으로 축소해보자. 석유로 호의호식한 100년은 한순간, 지극히 예외적인 시간이다. 박승옥은 그 잔치가 끝나간다고 말한다. 풍성했던 잔치 음식이 바닥났다.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먹어야 할까.


리처드 하인버그는 파티는 끝났다고 했다. 인생에서 파티는 한 순간이다. 파티가 끝나면 누구나 아쉬워하지만, 흥청거렸던 기억을 접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쩌면 수억 년 전 생성되었을 보물을 100년 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거의 탕진한 사람은 일상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100만년 살아온 선조의 방식이다. 파티는 끝났다고 선언한 리처드 하인버그는 다시 제로성장 시대가 온다는 책을 썼다. 이제 정신 차리자고, 석유 없던 시절의 삶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한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기정사실로 여기는 성장 신화에서 어서 벗어나야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은행이다. 대출이라는 수단으로 돈벌이하는 은행은 성장 없으면 존립이 불가능하다. 적어도 이자 이상 성장해야 은행도 은행에 돈을 빌린 사람도 버틸 수 있는데, 세상의 자산은 이자를 보장할 만큼 존재하지 않는다. 의자 빼앗기 같은 이자놀음은 거품 같은 성장이 보장되지 않으면 계속될 수 없는데, 석유 없는 세상에서 지금과 같은 금융 체제가 지속될 수 있을까. 우리는 은행이 없었을 시절에도 행복했던 조상의 삶을 엿볼 필요가 있다.


하루가 다르게 화려한 모습으로 바뀌며 제한 없이 공급되는 우리 의식주는 석유 없이 도저히 지속될 수 없다. 중앙이 일방적으로 공급하는 지금과 같은 소비는 공평하지 않다. 지리적은 불공평은 물론이지만 세대 사이의 불평등은 말도 못한다. 100년 흥청거린 대가는 후손에게 영속되지 않은가. 같은 지역이라도 지불 능력이 없으면 소외되고 마는 소비와 그 편의는 종말이 눈앞에 있는데, 석유를 대체할 화석연료는 충분하다고? 제로성장 시대가 온다에서 리처드 하인버그는 근거를 구체적으로 들며 그 가능성을 여지없이 부정한다.


쉽게 채굴할 양이 얼마 남지 않은 석탄이나 가스, 핵이나 셰일가스는 석유와 다를 바 없으니 가능성 대상에서 제외하자. 바이오 연료나 수력, 바람과 태양과 같은 자연 에너지는 충분할까. 성장을 보장할 정도의 에너지는 절대 공급할 수 없다. 에너지만 부족하겠나. 마실 물과 지하자원은 물론이고, 식량도 안심할 수 없다. 당장 한꺼번에 공급이 무너지지 않겠지만, 개발 거품의 마지막 행운을 뒤로 도미노처럼 무너질 날이 멀지 않았다. 잘 나가는 듯 보이는 중국의 상황도 어둡다고 하인버그는 부정하기 어려운 자료를 제시한다.


앞날을 대비한다는 대기업의 간척지 유리농업은 장삿속일 뿐이다. 시화호 간척지에 세운 동부그룹의 파프리카 온실은 물론이고 몬산토와 손잡고 새만금 일원에 GMO를 재배하려 든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은 삼성도 마찬가지다. 어떤 말로 치장을 하든, 석유 없이 개발과 운영이 불가능한 산업은 대안일 수 없다. 심화되기만 하는 기후변화는 환경을 예측할 수 없게 교란하는데, 소비를 부추기는 획일적 삶은 내일을 위협할 뿐이다.


하인버그는 석유가 곧 고갈되니 성장 없는 삶을 누리자고 제안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흙에서 나오는 수입이나 직장에서 받는 월급이 늘지 않더라도 하루하루,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으리라 여겼던 시절처럼 살아가기에 오늘 우리의 씀씀이는 지나치지 않는가. 100년 파티가 후손에게 넘긴 쓰레기는 이미 감당할 수 없도록 썩어 넘친다. 우리는 제로성장에서 그치지 않아야 한다. 후손의 행복한 삶을 위해 과감히 그리고 흔쾌히 후퇴를 감내해야 할지 모른다.


인광석을 캐내며 잠시 흥청거렸던 남태평양의 섬나라 나우루공화국은 시방 헐벗은 삶을 면하지 못한다. 바닥이 드러나는 인광석을 보면서도 흥청거렸던 대가가 혹독한데, 오래 전 이스터 섬으로 알려진 라파누이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한계가 다가왔을 때 거대한 석상 모아이세울 게 아니라 지탱 가능한 삶으로 돌아가야 했다. 우리네 삶도 다르지 않다. ‘성장의 종말을 이야기하면 눈을 부라리는 우리도 파티와 같은 삶을 서둘러 돌이켜야 한다.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하인버그는 감당할 수 없게 늘어난 인구를 지적하지 않아 아쉽지만 성장 없는 삶의 여러 대안과 그 실천 사례를 귀띔한다. 성장 신화가 만든 최면에서 벗어나, 성장 따위 모르고도 충분히 행복했던 조상의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거다. 그렇다. 파티가 끝났다고 불행해지는 건 아니다. (우리와다음, 2013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