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녹색평론 132호

나무에게-- 2013. 9. 8. 12:00

 

마리날레다 마을벽화 'Tierra y Libertad' 땅과 자유

 

책을 내면서

 

기본소득

......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숱한 사회적, 실존적, 생태적 위기상황은 본질적으로 종래의 습관적인 방법, 다시 말해서 더 많은 에너지와 물자의 생산, 유통, 소비, 폐기 ― 즉 경제성장 ― 를 전제로 하는 구태의연한 정책이나 사회운용 방식으로는 더이상 대응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그런 의미에서 성장 논리에 매달릴 필요도 없고 동시에 개인의 존엄과 자유를 차별 없이 보장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제도로서 기본소득이 지닌 잠재적 가치는 실로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근대 산업국가란 본질적으로 소수의 이익을 위해서 다수의 희생을 구조적으로 강요하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그러한 비인간적인 시스템을 확대하고 유지하는 데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이른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라는 소위 청교도적 노동윤리·생활윤리를 세계 전역으로 퍼뜨려 모든 비서구 전통사회들도 예외 없이 이 윤리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것이었다......

 

...... 오늘날 지구사회 전체가 직면한 경제위기·금융위기는 대공황기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금융통화 메커니즘의 소산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산업경제의 확산과 유지를 위한 필수적인 자원들, 특히 석유자원이 빠르게 감소·고갈되어가고 있는 새로운 현상과 맞물려 있다는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경제성장 시대가 계속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고, 따라서 고용문제를 비롯한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사회적 모순과 혼란을 더 많은 성장을 통해서 해결한다는 논리는 이미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어버렸음이 분명하다.

 

...... 기본소득이 ...... 자멸의 길을 갈 것이냐...... 이 상황을 만들어온 기성의 낡은 사고와 논리에 마냥 매달려 있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짓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정말로 필요한 것은 경제성장 시대 이후를 내다볼 수 있는 상상력,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이다.

 

후쿠시마 사태와 일본 정치

...... 엄중한 상황에 맞설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없을 때, 인간사회와 그 정치가 얼마나 밑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는지, 그 생생한 예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지금 일본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후쿠시마 사태가 발생한 지 2년 반, 일본의 정치가들과 엘리트들은 이 미증유의 원자력 사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고, 귀중한 시간을 계속 허비하고 있다. 그것은 지난 7월 말 일본정부가 스스로 후쿠시마 상황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음을 시인함으로써 명확히 드러났다.

사실, 후쿠시마 사태는 의지가 있고 돈이 있다고 해서 계획대로 제어가 가능한 그런 종류의 산업재해가 아니다.

 

...... 현재 후쿠시마 원전 사고현장에 투입되어 수습작업에 임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사실상 사고처리는 아무것도 진전된 게 없고, 어떻게 해볼 도리도 없는 속수무책의 상황이라고 한다. 게다가 이제는 고농도 방사능 피폭을 무릅쓰고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노동자를 더이상 확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사고현장에서의 작업을 위해서 원전 노동자들에 대한 피폭 허용 기준치를 몇 번이나 상향 조정했지만, 그것도 이제는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 간단히 말하면, 원자력이라는 것은 절대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닌데도, 이 기초적인 사실을 주제넘게 무시하고 ‘원자력을 통한 평화와 번영’이라는 자가당착적 슬로건으로 끊임없이 일반시민들을 속이고, 자신들까지 속이며 지금까지 원전을 만들고 유지해온 자들의 가공할 교만심과 어리석음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식민지 이중구조’

...... 현재 미국 코넬대학 교수로 있는 평론가 사카이 나오키(酒井直樹)에 의하면, 전후 일본 권력 엘리트들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해온 것은 ‘식민지 이중구조’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그들이 미국에 대해서는 철저히 굴종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동시에 한때 일본의 식민지 혹은 반식민지였던 동아시아 인근 국가·국민에 대해서는 늘 오만방자한 자세로 일관하는 행태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 근대화를 급속히 추진해 나가는 과정에서도 일본 지배층이 기댄 것은 탈아입구(脫亞入歐)라는 이데올로기였다.  ..... 그들에게 근대화는 곧 서양화였고, ‘아시아’라는 것은 경멸의 대상이자 하루빨리 버려야 할 모든 것의 대명사였다.

‘탈아입구’라는 것은 결국 강자숭배주의 이데올로기이다.

 

원자력, 극단적인 ‘희생의 시스템’

원자력 시스템이 존립하기 위해서는 첫째, 원전 인근 지역에서 늘 불안과 위험 속에 살아야 하는 시골 사람들의 희생이 필요하고, 둘째, 원전의 방사능 구역에서 온갖 궂은 작업을 수행하며 살아야 하는 노동자의 희생이 필요하며, 셋째, 처치 불가능한 핵폐기물을 떠안고 살아야 할 미래세대들의 희생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원자력은 안전하고 값싸고 깨끗하다는 말도 안되는 거짓말이 끊임없이 유포되는 상황에서 늘 진실이 희생되고, 진실에 기반을 둔 건전한 사회적 이성과 상식이 늘 희생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 전쟁이든, 원자력이든, 비인간적인 시스템은 언제나 직접 피해를 입을 위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희생되는 것은 부와 권력으로부터 먼 약자들일 수밖에 없다(후쿠시마 사고 이후, 후쿠시마 원전에서 생산된 전력이 100% 수도권에서의 소비를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당혹해 한 사람들이 많다).

 

...... 이렇게 보면, 오래전부터 원전을 도쿄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해온 반핵운동가 히로세 다카시(??隆)의 논리는 정곡을 찌르는 바가 있다. 히로세의 주장이 단순한 풍자가 아니라는 것은,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더글러스 러미스의 증언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지난 가을 히로세가 오키나와에 와서 후쿠시마 참사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는 ‘원전을 도쿄로’라는 아이디어와 ‘후텐마 기지를 야마토 일본으로’ 운동이 유사성이 있다는 데 공감했다. 나는 그에게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히로세의 아이디어는 풍자이고, 미군기지 본토 이전 아이디어는 정말 진지하게 얘기되고 있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에 히로세는 강하게 부정하며, 그 역시 매우 진지하게 원전을 도쿄로 옮기는 운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원전을 도쿄로 옮기는 것만이 도시사람들로 하여금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 〈경향신문〉, 2012년 3월 20일자

 

 

.......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매우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고, 조상과 자신들이 가꾸어온 삶터를 뺏기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진실로 염원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그냥 이대로 살게 내버려 달라”는 것이다. 시골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원하는 것은 거액의 보상금도 아니고, 대체지(代替地)도 아니다. 그들의 요구는 단순하면서도 강경하다. 즉, 국익이니 경제발전이니 하는 거창한(결국은 허황한) 명분을 내세워 풀뿌리 백성의 삶을 짓밟는 짓은 이제 제발 그만두라는 것이다. 소위 도시의 석학들, 고명한 지식인, 시민운동가들 중 그 누구도 감히 하지 못하는 발언을 지금 시골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하고 있다.

...... ‘희생의 시스템’ 위에서 돌아가고 있는 근대국가와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