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더

임용장

나무에게-- 2013. 9. 11. 14:43

우리 사회는

.

연.

줄.

선배.

동 향.

..

 

공무원 조직 역시

무슨무슨 줄이니 하는 말들이 공공연히 사람들 입에 회자 되고,

그 영향이 상당히 느껴 지기도 한다.

긍정적으로 잘 처신하면 될지 모르지만

 

전 직장에서

노골적으로 봐주겠다는 의중을 직접 받았을때

정말

당황스럽고 짜증 났었던 때가 있었다.

그땐 젊었고

 당당하고 싶었다.

벌써 10여년이 훌쩍 지난 옛 이야기 이지만...

 

지금은 연줄에서 좀 자유로워 졌을까?

 

삶의 전환이 되었던 임용장을 모아 보았다.

 

 

코피가 나도록 공부(암기?) 해본게

처음이었다.

정말 코피가 나더구만..

이렇게 했으면 원하는 대학을 얼마던지 갔을 거라고 생각 했다.

 

저날은 내 생의 가장 기쁜 순간중 하나였다.

 

필기합격 통보를 받은건 친구 누나가 운영 하던 레스호프 였다.

"헤리슨포드"

아침 햇살이 창으로 가득 비치고 들어오면

신나는 음악을 틀고,

맛도 모르고 먹지도 못하던 커피를 내리고

열심히 마포 걸레질을 하고 있을때

받았던 전화 한통 !

 

"합격을 축하합니다. 면접에 꼭 나오시기 바랍니다."

 

아침 햇살이 그렇게 눈부실 수가 없었다.

 

맛도 모르던 커피향기가

 

그렇게 향기로울 수 없었다.

 

처음으로 맛보았던 성취의 달콤함.

 

그러나

면접은 절망이었다. --

면접관중 2명은

오로지

학창시절 점거농성으로 무기정학 되었던 기록.

이것만 질문했다. --.

면접장을 나오며

아 ... 맘대로 되는게 없구나.. 싶었다.

 

하지만

결과는 최종합격 이었다.

 

적성검사에서 너무 많은 인원이 탈락한 것이다.

모집 인원의 약 70%(?)만 통과 하였고

면접에서 탈락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것이 곧 부메랑이 될 줄이야... 미달된 인원 만큼 경력자를 선발한 것이다.-- )

 

그리고, 보험삼아 보았던 서울지하철공사도

한달뒤 합격 통보를 받았다.

 

사실 이때만 해도 현장업무는 별로 선호하지 않았고,

지하철 공사는 공기업 중에서는 별로 였다.

 

하지만 나는 이건으로 더욱 기세 등등해 졌다. --.

별거 아니구만...

 

 

11월에 교육원에 입교했다.

이곳에서 만난 나의 동기들....

다들 좋아 보였다.

철도 등 다른 기관에 경험이 있었던 몇몇 말고는

다들 순수하고 착해 보였다.

 

공채1기

우리는 이 타이틀에 굉장한 의미를 두었다.

내가 서울지하철을 쉽게 포기한 이유의 한가지 였다.

 

같이 술먹고, 놀러 다니고,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을 다들 즐기고 있었다.

말 그대로 좋은 시절...^^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있었으니

 

"보턴맨"

 

모든 장치가 자동화 되어 있어 니들이 하는 건 기계를 감시하고 출발 보턴만 누르는 거다.

 

시청에서 지하철공사로 이동한 인사팀장(?)이 했다는 이말은 상당히 자존심 상하고 열받는 말이었다. 

 

 

드디어 발령!

 

근데 고참이 왜 이리 많냐 --.

거의 우리 쪽수와 같았다는......

참 능글 맞고,

자신의 영달에만 매달리듯이 보이는 이들이 나는 정말 싫었다.--.

왜 그리 천박하게 보였을까?

나도 별거 없으면서...

 

그래서 직장 생활이 별로 였나고?

 

I.M.F

 

구제금융이 불어 닥쳤다.

이 시기를 나는 정말 든든하게 지났다는 생각이 든다.

찌질한 공사가  아니라

친구들,

사람들,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짤릴 우려가 없는 공사 직원 이었던 것이다.

 

내 인생의 황금기 였을까?

 

그러나,

초 대형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2003.2.18.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

 

안심 대기실에서 전날 숙취에 멍하니 기다렸으나,

인수 받아야 할 차량이 들어오지 않았다.

대기실에 있던 우리는

무슨일이 벌어진건지 아무도 몰랐다.

.

.

그리고 퇴근시간이 되어서

1080호 기관사의 승용차 열쇠를 받고 그의 집으로 차를 갔다준 기억...

죽다 살아난 1079호 기관사 문안 갔던 기억...

(둘다 실형을 살았다. --.)

 

이후

하루하루는 정말 고통스럽고 절망 이었다.

 

게다가 타의반 자의반으로

승무지부노조의 사무국장이라는 자리

 

사실

감당하기 힘든 사건이었다.

 

이후 이어진 몇번의 집회와 안전을 위한 파업들......

무려 100일이 넘게 파업이 지속되었으나

남은건 없었다.

교통수송 분담율이 너무 낮았다는 점.

영향을 줄수가 없었고 계속 해보라는 그들의 태도.

 

사고 직후

그동안 가졌던 이 직업에 대한 회의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들이 몹시 나를 흔들었다.

보턴맨으로 표현되는

일에서 사람이 소외되어 가는 대표적인 직업으로 느껴졌다.

선배들은 우리가 먹고 사는 동안에는 문제 없다는 말로

이 직업이 갖는 불안정에 대해 자위했다.

하지만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임금만 축내는 직업으로 취급 받을 거라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레일위를 달리는 철도의 특성으로 분명히 자동화의 대세를 되돌리지 못할 거라는,

우리는 더욱더 소외될 것이라는.. 

 

그리고,

노조 사무국장이라는 자리가

나를 감당하기 힘든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가족들(?)은 오로지 나만 믿고 있었다.

내가 직장을 잃는 것은 가족에게 경제적 재앙 이었다.

 

탈.출.

그냥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고,

기계의 한 부품같은 이 일보다 가치있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

기계가 대신 할 수 없는 사람만이 하는 일...

그리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사무국장에서 벗어 나고 싶었다.

 

그리고 도망 치듯이

전직을 했다.

 

2003년 소방직 최종합격자 명부(2013.7.7.)

 

□ 소방분야 - 40명(응시번호순)

10007 황윤석 10032 유충호 10036 정재헌 10039 김태규   10050 류지일 10052 김대호 10053 김대석 10066 김진권
10068 차종헌 10112 장도문 10129 이관호 10138 권영배   10154 권오현 10157 배이환 10162 이수영 10175 최정수
10176 김종수 10192 탁창운 10199 김종기 10211 이병창   10231 이승재 10236 신재성 10244 박주환 10245 김종성
10246 한희석 10247 손창운 10251 최인재 10303 박희진   10327 김정오 10328 임순배 10335 최재현 10346 강성민
10360 조상호 10398 박민섭 10433 이영준 10439 김현중   10453 이종우 10469 전진욱 10534 차승환 10545 박성범

□ 운전분야 - 40명(응시번호순)

20004 정만욱 20006 배상운 20012 신상목 20021 김중순   20022 권도형 20034 김창국 20037 김성식 20038 하수길
20060 손진규 20061 박찬필 20072 김재영 20086 최태근   20110 안정도 20111 이영하 20140 김정배 20150 김건호
20167 여용원 20169 허   규 20175 김정대 20192 최창영   20197 조재곤 20209 배대익 20210 도진회 20222 안영동
20252 이상욱 20258 이시찬 20262 서재영 20292 장현탁   20297 박상윤 20301 정천상 20312 이용국 20343 정기호
20365 박찬국 20409 신해수 20412 이성현 20439 최영준   20511 김동철 20591 홍명효 20620 이기수 20625 최경동

 

2월에 참사 발생,

 

이건 뭔 미친 짓인가? 아무런 대책도 원인도 파악이 안된상태에서 반쪽운행을 결정하고 사고발생 2일 만에 지하철을 계속 운행 시켰다.

지금도 그 결정을 한 자들의 심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때 운전실에 같이 소방관이 한명 동승을 했다.

이것이 인연의 끈이 되었을까?

당시 동승했던 몇몇 소방관은 직업에 대한 불만이 굉장히 많았던것 같다.

아마도, 비번날 동원되어 지하철을 몇 시간씩 타고 있어야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좋은 직업으로 보였다.

소방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불을 끄고, 구하고 얼마나 멋진 직업인가?

그리고,

소방차 운전 이었다.

 

3월 원서접수,

5월에 소방직 시험,

6월에 체력검정 통과,

7월 최종합격,

8월 발령

 

시험을 준비하면서 반쪽 운행(안심-동대구)구간에서 일하고

최종 합격후에도

언제 발령날지 몰라 계속 출근 했다.

 

사람이 간절하거나,

절실하거나,

다른 선택이 없거나,

이러면

단, 2개월도 안되는 기간에 시험준비가 된다는 사실을 이때 알았다.

참으로 절실했다.

 

이후

늘 미안했다.

그들을 남기고 나만 도망친것 같은 죄책감이 늘 마음 한 구석에 있었다.

 

참사후 승무팀에서 직장을 떠난 이는 내가 유일 했다.

 

 

 

아.

이놈의 발령.

정말 좀 쉬고 싶었다.

이렇게 빨리 발령이 날 줄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는데..

딱 일주일 전에 통보가 왔다.

사직서 통보도 못한 상태 였다.

일주일 동안에 겨우 8.16일 사직서 처리와 기타 행정적이 처리를 하고

 

발령신고 전날

오렌지색 기동복을 세탁소에 가서 고치던 기억.. 

뭔 군대같이 줄을 서서 큰소리로 신고하던 기억..

정말 더웠던 소방본부 강당..

소방서 배치되자 배치교육 받던 그 재미없던 기억..

발령 그날 야간 근무에 배치된 기억..

그 오래된 칙칙한 서부소방서 건물 후정에서 달을 보며 혼자 눈물을 흘리던 기억..

합격자 명단의 동기들

그들과 함께하게 되었지만

지하철 만큼

정이 들진 않았다.

 

 

면.허.증.

 

지하철공사에서 소방관으로 전직할 때

결정적이었던 대형 차량 면허,

 

간호사 면허증은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준비 하는 자 만이 기회를 얻는다."

 

여성으로 한국 사회에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지 알고 있었기에

아내가 그나마 전문직을 가질수 있는 간호사 면허를

꼭 가지길 바랬다.

 

그리고

그나마 가장 차별 없고 견딜만한 공직을 강하게 추천했다.

 

그러나 그 관문은 어렵고 힘들었다.

 

 

임.용.장.

이 임용장을 받기가 어찌 그리 힘들었던가?

아내의 임용장은 더 힘들었다.

소수 직렬,

1명 선발,

치열한 경쟁,

나무 돌잔치가 끝나고 아내는 시험준비를 했던것 같다.

그때가 2003년 후반기,

최종합격 2008년12월,

5년,

 

나무와 차를 타고

시험장을 간것도 여러번.

엄마 힘내라고 산에도 오르고,

예쁜 절에도 가고

부처님 오신날

등도 달고..

 

마지막 2008년은 정말 힘들었다.

아마도 그해를 넘겼으면

난 그만 두자고 했을지도 모른다.

 

구급차를 운전하면서 필기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머리까지 쭈삣쭈삣 서는것 같았다.

희.열.

 

그런데,

선발은 1명, 필기합격은 2명, 컥! 동점자가 있었던 것이다. --.

 

열심히 준비했다.

옷, 머리모양, 예상질문.....

경북도청 뒷 동산이 참 아담하고 잘 정리되어 있었다.

 


어머님이 참 기쁘하셨다.

그것만 해도 충분 했다.

 

아내는 교육원이

가장 좋은 시절이었다고 한다.

나도 인정한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며

아내는 정식 임용이 1년 연기 되었다.

왜.

자리가 없어 졌다.

뭔 사람 뽑아 놓고 자리 없애버리고,

공직을 뭐 같이 여기던

이명박 정권의 흔적.

.

.

 

그리고

 

지금도 인사 발령장을 가끔 받는다.

 

 

2008 경상북도 채용 공고:  http://www.gb.go.kr/open_content/exam/index.jsp?LARGE_CODE=170&MEDIUM_CODE=1&SMALL_CODE=&SMALL_CODE2=&SMALL_NAME2=&SMALL_CODE3=&SMALL_NAME3=&dept_code=&dept_name=&target=main&show_4depth_navi=&url=/Common/board/board.jsp&menu_code=&menu_name=&menu_code2=&menu_name2=&URL=/Common/board/board.jsp&BD_CODE=sihum_info&cmd=2&Start=30&B_NUM=949866&B_STEP=11125299&B_LEVEL=0&key=2&word=2008&p1=30&p2=0&V_NUM=1

2008 경상북도 경쟁률 : http://www.gb.go.kr/open_content/exam/index.jsp?LARGE_CODE=170&MEDIUM_CODE=1&SMALL_CODE=&SMALL_CODE2=&SMALL_NAME2=&SMALL_CODE3=&SMALL_NAME3=&dept_code=&dept_name=&target=main&show_4depth_navi=&url=/Common/board/board.jsp&menu_code=&menu_name=&menu_code2=&menu_name2=&URL=/Common/board/board.jsp&BD_CODE=sihum_info&cmd=2&Start=20&B_NUM=962410&B_STEP=12377299&B_LEVEL=0&key=2&word=2008&p1=30&p2=0&V_NUM=4

2008 경상북도 필기시험 합격자 : http://www.gb.go.kr/open_content/exam/index.jsp?LARGE_CODE=170&MEDIUM_CODE=1&SMALL_CODE=&SMALL_CODE2=&SMALL_NAME2=&SMALL_CODE3=&SMALL_NAME3=&dept_code=&dept_name=&target=main&show_4depth_navi=&url=/Common/board/board.jsp&menu_code=&menu_name=&menu_code2=&menu_name2=&URL=/Common/board/board.jsp&BD_CODE=sihum_info&cmd=2&Start=0&B_NUM=972036&B_STEP=13336399&B_LEVEL=0&key=2&word=2008&p1=30&p2=0&V_NUM=26

2008 경상북도 최종 합격자 : http://www.gb.go.kr/open_content/exam/index.jsp?LARGE_CODE=170&MEDIUM_CODE=1&SMALL_CODE=&SMALL_CODE2=&SMALL_NAME2=&SMALL_CODE3=&SMALL_NAME3=&dept_code=&dept_name=&target=main&show_4depth_navi=&url=/Common/board/board.jsp&menu_code=&menu_name=&menu_code2=&menu_name2=&URL=/Common/board/board.jsp&BD_CODE=sihum_info&cmd=2&Start=0&B_NUM=975316&B_STEP=13663699&B_LEVEL=0&key=2&word=2008&p1=30&p2=0&V_NUM=32

 

경상북도지방공무원임용시험 최종합격자 공고080927.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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